◆ 성경본문 : 창세기 19:12~22 / 롯이 소돔을 떠나다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 말씀해설
소돔성이 멸망하는 상황 가운데 롯은 소돔을 떠나고 싶지 않아 지체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됩니다.(15절, 16절) 롯은 소돔을 떠나라는 천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돔에 머물고자 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미 소돔은 죄악으로 가득해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사자를 보내 심판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롯이 지체하며 소돔을 떠나지 않으려고 한 것은 그만큼 공의에 대한 개념에 있어 명확한 선을 긋지 못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 묵상
하나님은 범죄를 저지르는 소돔에게는 아주 무섭게 멸망시키시지만 롯의 가족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시는 따뜻한 분이시기도 하다.(참 19:16) 이렇게 늘 안전한 길로 안내해주시만, 나 또한 롯처럼 그 안전한 길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앞이 보이지 않은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생각들로 하나님을 보지 못하며 그렇게 어리석게 살아간다. 지난 주 토요일 요한복음에서 말씀처럼 교회만 출석하는 믿음이 아니라 맹물을 포도주라 생각하고 떠다 주는 믿음이 필요하다. 하루하루 하나님의 신뢰하고 인정하며 보내자!
[지난주 토요예배 말씀] - 팀장님 요약 분
요한복음 2장 1~11절 <가나의 혼인잔치>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자 우리는 경쟁의 시대에살고있다. 어린아이부터 경쟁을 시작한다. 선행학습과 사교육을 시작하게 된다. 공부를 하고 수능을 준비한다. 대학에 들어가서 스팩을 쌓고 토익을 준비하고 스토리도 만들어서 취업을 준비한다. 취업을 하고 계약직으로 시작해서 정규직으로 경쟁하며 일을 한다. 배우자를 만나 어렵게 전세 집 구하고 대출금을 상환하며 살아가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똑같이 살아간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 속에 살아간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도 이와 같이 살고있다.
이 요한복음의 공동체의 삶을 보도록하자. 역사적으로 66~70년도에 쓰여졌다. 여전히 로마가 다르시는 이스라엘지역이었다. 이때 봉기가 일어나고 작은전투가 일어나고 게릴라식 전투를 로마가 정예군을 파견하여 완전히 잠재우고 성전을 돌하나도 남김없이 폐허된다. 예배가 없는 시대이다. 그래서 회당문화가 자리잡는다. 회당은 관계의 장이고 경제적인 요소도 들어가있다. 그안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유대인들이 그들을 속출하기위해 예수를 저주하는 기도문을 만들고 그 기도문을 읽음으로 그리스도인을 속출하고 믿는자는 저주를 받는 자로 살아가야하며 믿음을 고백하는자는 경제적인 것과 생활하는 모든 것을 잃게된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출교를 당하는 것이며 생명을 걸어야하는 행위였던것이다. 그래서 믿음이 계속적으로 성장해야하는 것을 요구하고 믿는다고 고백하는것은 많은 것을 잃는 것이기에 예수그리스도 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했던것이다. 그들은 기쁨이 없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생명을 거는 행위인것이다. 1세기의 크리스찬들은 불생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세상이 아무리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소망가운데 선택하여야한다고 말한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시작한다.
본문에 보면 가나의 혼인잔치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만나지 사흘째되던날이다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는다.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했다. 아직 정식제자가 아니었고 세례요한의 제자였을것이다. 세례요한같은 사람이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이 메시아라해서 따라 다니게되었다. 그리고 간곳이 술판과 춤판이 벌려진 잔치집에 초대된것이다. 아주 어색한 자리였을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11절 사흘째 되던날에 그들은 예수를 믿었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믿으면 영생에 이른다는 사실을 믿었다는 것이다. 포도주의 의미는 무엇일까 막 생활을 시작할 부부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 그 의미는 무엇을까? 그이적은 무엇을 의미할까? 요한복음이선 기적이 아닌 표적이였다. 메시아를 나타내는 것이였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것은 절망의 상황이였다. 그시대의 삶을 정황이였다. 예수님이 그 정황가운데 들어오셨다. 그때 예수님이 정결예식애 쓰이는 항아리에 물을 부우라한다. 정경예식은 하나님이 나아가야하는 율법와 같은 행위였다. 율법으로 자신의 수치를 가리려는 행위였다. 불완전한 율법을 상징이였다. 그 항아리가 6개가 있었다. 정결예가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6은 유대인이게 완전 불완전하다는 뜻이기도하다. 이제 물을 항아리에 담는다. 물을 담는일은 쉽지 않았다. 시냇물을 채워야하고 가장 낮은 곳에 가서 어렵게 해야한다. 이 어렵고 미친짓을 하고있는것이다. 말도 안되는 일들을 하고있다. 우리의 상황과 같은 일이다. 이정도는 할 수있다. 그러나 주님은 더 큰것을 요구한다. 그물을 연회장에 가져다 줘야 한다는 것이다. 맹물을 떠서 연회장에 가지고 가야한다는 것이다. 믿음을 보이라고 요구하시는 것이다. 1세기를 살아가는 요한공동체에게 믿음을 보이라고 주님이 요구하고 계신다. 그런데 그들이 믿음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맹물이 어떻게 포도주로 바뀐치는 모르지만 포도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새 가정에 축복을 연회장에는 잔치가 다시 시작되었다. 누군가의 의해서 이일이 일어났다 . 잔치의 기쁨은 하인들에 의해서 일어났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서 일을하신다. 우리의 협조를 보이길 원한다. 예수를 믿으며 누구나 할수있는 일이 아닌 나의 안락함을 버리고 믿음을 보이는 일을 해내야한다는것이다. 예수를 저주하는 기도문을 읽지 않고 매질을 당하며 격리당하고 아이들과 이별하고 배고프고 가난하게 살아가게 된다. 우리에겐 그 결단이 필요하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길 원할까? 세속 가운데 살아야 할까? 어떠한 삶을 살아갈것이다. 믿음을 결단을 하자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일만하는것이 아니라 그맹물을 가져다 줘야한다. 우리의 삶에 모든 부분에서 믿음을 보여야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야한다. 이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일에 우리가 수고를 해야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때란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하기도한다. 예수님의 피에는 죄사함이 있고 영생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리는 일이기도하다. 그 예수님을 믿어보자.
◆ 성경본문 : 창세기 19:23~29 / 소돔이 고모라를 멸하시다.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 말씀해설
24절에 유황은 불과 함께 하늘로부터 내렸다고 언급되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린 유황과 불은 인간의 죄악에 심판이 하나님의 권한과 권능에 속한 일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인간과 세계를 창조하시고 보이지 않는 곳까지 살피시고 다스리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진 유황과 불은 인간의 가증한 죄악 곧 더러운 탐심과 소유의 욕망과 악한 욕망의 종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성도는 이 땅에 악인이 성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으나, 종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믿고 경성해야 합니다.
◆ 묵상
29절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라는 구절을 보며 역시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구나... 라고 묵상해 본다. 지난 날 나에게도 나의 오랜 기도를 들어주셨던 것이 문득 생각났다. 하나님은 나의 작은기도도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는데 피드백이 오기 전까지 왜이렇게 투정과 불만이 많았는지.... 그리아니하실지라도 나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조금 더 성장해 나가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 성경본문 : 창세기 19:30~38 / 모압과 암몬 자손의 조상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 말씀해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자, 롯의 두 딸은 이제는 소망이 없다는 생각으로 아버지와 동침하여 모압과 벤암미(암몬)를 낳게 됩니다. 두 딸들의 행위는 목적상 종족 보존이라고 정당화될 수도 있겠지만, 목적 달성을 위한 그들의 수단은 지극히 세속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정하고 타락된 방법으로 얻은 두 아들 모압과 벤암미는 후에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을 섬기는 대표적인 종족이 되고 맙니다.(민 21:29, 신 4:3) 그리고 아브라함 후손들의 대적이 되어 이스라엘 적대자가 됩니다.
◆ 묵상
처음 말씀을 읽었을 때 롯의 딸들의 행동들이 어이없고, 정죄를 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나 또한 롯의 딸들처럼 세상적인 판단으로 타인을 생각하고 있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미워하고 있다. 의도치 않은 일들이 내 마음을 어렵게 하고 참 아프게 한다. 하나님이 소돔성에서 롯을 구하시려했지만, 아내와 두 딸들의 어리석음에 죽음 또는 이스라엘의 적대자가 된다. 이렇듯 세상적인 기준과 판단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일인지를 느꼈지만 난 아직도 롯의 딸들을 정죄한 것 처럼 나를 정죄하고 판단하는 그들의 무리를 이해하고 싶지도... 품고 가고 싶지도 않다. 내가 조금 더 성숙해 져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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